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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할아버지가 탈옥한 이야기

중국의 근현대사는 일정부분 우리와 많이 닮아 있다. 전통적인 유교사상을 기반으로한 기득권세력의 실정이 일제의 침략으로 무너지고 급격히 들어온 서구 사상의 파도에 휩쓸려 여러 이념과 제도들이 난립했다. 그중에서도 자유주의와공산주의의 극렬한 대립은 중국과 우리 현대사에 엄청난 시련을을 안겨주었다.주인공 루옌스는 전통의 끝자락에 기득권층으로 태어나 미국유학에 박사학위를 취득하며자유주의를 온 몸으로 받아들이며 젊은 시절을 보냈다. 아내 펑완위와의 결혼은 그에게 관습과 가족의 굴레로만 여겨졌고 중국으로 돌아와 교수를 하면서 국민당정부의 독재적인 행태에 반감을 갖는다. 오로지 인간으로써 누릴 자유와 권리가 우선이었던 그에게는 인민을 해방시킨 혁명군대에게도 눈엣가시 였을 뿐이다. 반 혁명분자로 몰려서 긴 유배생활을 하면서 수십년을 가족과 떨어져 힘든 유형생활을 오로지 생존을 위해 버틴다. 그 긴세월동안 묵묵히 자신의 곁을 지켜주는 아내 펑완위에 대해 비로소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그녀를 바라볼수 있게 되는데 그가 사회로 돌아온 시기는 이미 그녀의 기억속에 루옌스는 과거의 모습으로만남아있다. 여전히 남편을 기다리고 마중나가면서도 정작 수십년만에 실제로 곁에 돌아온 남편은 알아보지 못한다. 아버지로 인해 반혁명분자로 긴긴세월 낙인찍혀 지낸 아들과 딸은 글를 남처럼 대하지만 평완위에게는 그 무엇보다 소중한 존재다. 비록 현실의 루옌스는 알아보지 못하지만 그녀의 기억속에 루옌스는 늘 존경하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 그런 그녀가 루옌스의 사형선고를 미루기위해 감내해야했던 모든 것들이 그녀의 영혼을 메마르게 한건 아닌지. 기억의 한구석에 남겨진 짙은 주홍글씨가 그녀 스스로를 과거에 가두어 둔것은 아닐까 싶다. 젊은 날 그 무엇보다 인간의 자유와 존엄에 자신의 존재와 정체성을 두었던 꼿꼿한 학자 루옌스는 그 시절 자신이 알아보지 못한 보석같은 아내의 존재를 삶의 끝자락에서 이해하고 사랑하고 존중하게 되었다. 이해해야지만 믿을 수 있던 루옌스는 믿기에 모든 걸 이해했던 아내 완위를 그제서야 이해하고 사랑한것이다. 영화 5일의 마중 은 원작의 극히 일부분으로 정말 감동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영화속 주인공 진도명과 공리는 책속의 루엔스와 평완위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처럼 연기했다.영화에서 평완위의 길고 긴 사랑과 기다림에 방점을 찍었다면 책속의 루엔스를 통해 한 인간의 존엄과 자유가 체제와 이념, 국가폭력에 의해 어떻게 무자비하게 찢기며 부서지는 지가 더욱 와닿았다. 장예모 감독은 중국 국가의 추앙받는 감독으로 이런것까지 세세히 담기는 어려웠을 듯하다.결국 인간에 대한 이해가 국가와 이데올로기에 대한 맹목적 믿음보다 존중되어지는 사회가 제대로 된 모습이지 않을런지.우리 사회 역시 이제서야 조금씩 인간에 대한 이해가 더 존중되어지는 사회로 나아가려 애쓰고 있다. 국가가 해야할 일은 국민에 대한 보호이지 군림이 아니다. 아내가 떠나간 가족의 틈에서 루옌스는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했다. 이 글을 쓴 손녀만이 유일하게 그를 이해하려고 했지만 결국 그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다. 긴세월 초원에서 만끽한 유형의 자유. 그것이 생활의 편리함과 물질적 안락함보다 훨씬 그를 더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가 사라진 자리. 지금 중국의 모습이 겹쳐진다.

중일전쟁과 국민정부를 거쳐 문화대혁명까지 중국의 역사와 함께 흘러간 개인의 삶!계모와 아내 사이에서 자유를 갈구하다 대초원에 유배된 지식인 루옌스.정부가 뭐라고 한들, 사상이 어떻게 변한들, 지식인의 삶이 응당 어떠해야 한들언어를 사랑하는 자유인으로 살고 싶었다.자신이 아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깨닫고 탈옥하지만 이미 기억을 놓친 아내와 마오쩌둥의 공산주의 사상에 세뇌당한 아이들에게 그는 가족과 정부를 배반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 20여 년간 대초원에 유배된 루옌스는 과연 모진 혁명의 시대를 견뎌 내고 아내의 사랑과 진정한 자유를 찾을 수 있을까.[나의 할아버지가 탈옥한 이야기]는 그렇게 대초원에서 탈옥한 루옌스의 일대기를 손녀가 받아 적은 구성으로, 중국의 저명한 소설가이자 극작가인 옌거링의 최신작이다.